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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한국산 암말 레클리스 이야기

광화문[태종] 2025. 7. 3. 05:32

6.25와 한국산 암말 레클리스 이야기

 

 

​1997년 미국 유명 잡지 ‘LIFE’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 100인을 발표했습니다. ​ 조지 워싱턴, 에이브러햄 링컨, 마틴 루터 킹 등. ​ 미국이 가장 존경하는 위인들이 즐비하지요. ​ 그 중 한 명이 ‘레클리스‘(Reckless, 무모한·저돌적인)였습니다. ​ 미국 전역에 기념비가 다섯 곳에나 세워질 정도로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은 존재입니다.

 

 

놀랍게도 레클리스가 활약한 무대는 ‘6·25 전쟁’이었습니다. ​ 전쟁 영웅을 존중하는 미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 그의 국적은 한국이었습니다. 또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을 덧붙이면, 레클리스는 사람이 아닙니다. ​ 타고 다니는 말(horse)입니다. 한국의 말이 어떻게 미국에서 큰 사랑을 받게 된 것인지.

 

 

​호국보훈의 달 6월, 레클리스의 이야기는 애써 생색(生色)내기 좋은 시기입니다. ​ 미국 해병대가 찾은 잘생긴 암말  레클리스의 이야기는 ​ 1952년 3월 서울, 6·25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시작됩니다.

 

 

​군마가 필요했던 미국 해병대는 서울경마장에 찾아갑니다. ​ 아직 어린 한국 소년이 말 한마리를 데리고 서 있습니다. ​ 밤색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암말이었습니다. ​ 소년은 어린 여동생이 지뢰를 밟고 다리를 잃어 보철물이 필요해 말을 판다고 했습니다. ​ 찡한 가슴이 동한 것과 더불어, 암말은 유난히 잘생기고 성격이 좋아보였습니다. ​

 

 

소년은 말을 건네주면서 말했습니다. ​ “녀석의 이름은 여명이에요. 한국 말로 아침 해라는 뜻이에요. 잘 돌봐주세요.” ​ 소년은 말이 저 멀리 떠날 때까지 지켜보고 서 있었습니다. ​ 가정 형편만 아니라면 팔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소년의 눈가에 눈물이 고입니다. ​

 

 

미국 해병대는 여명에 보급품과 탄약 운반을 맡겼습니다. ​ 날씬하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던 여명이 미국 해병대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요. ​ 얼굴도 잘생겼는 데다가, 한번 가르쳐준 길을 완벽하게 숙지할 정도로 머리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 먹이를 주는 해병대원들에게 얼굴을 비비기도 하고, 대화하는 장소에 굳이 찾아와 자리를 지킬 정도로 사교적이었습니다. ​ 훈련은 어찌나 빨리 적응하는지. 마치 인간의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척척 수행합니다. ​

 

 

여명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코카콜라와 스크램블 에그. 영략없는 미군이었습니다. ​ 포탄을 뚫고 온 영웅 ‘여명’ ​ 전쟁이 끝나가는 시기일수록 전투는 더욱 치열하게 벌어지기 마련입니다. ​ 정전 사인 직전의 영토가 그대로 고착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 테이블 앞에 앉기 직전까지 총질이 끊이지 않았던 배경입니다. ​

 

 

1953년 3월이었습니다. 정전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그야말로 총알이 빗발치는 전투가 벌어집니다. ​ 경기도 연천군에서 벌어진 ‘베가스 전투’였습니다. ​ 중공군과 미군사이에 총알과 포탄이 가득합니다. ​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많은 죽음의 전장이었습니다. ​

 

 

미군이 중공군의 공격으로 힘겨워하던 때. 마침 보급품도 다 떨어진 상황입니다. ​ 그때 연기를 뚫고 유유히 도착한 영웅이 있었습니다. ​ 서울경마장에서 샀던 암말 ‘여명’. 녀석은 포탄도 두려워하지 않은 채 미국 해병대원들이 쓸만한 보급품들을 전달합니다. ​ 베가스 전투 동안 51번이나 단독으로 임무를 수행했을 정도였습니다. ​

 

 

부상도 두 번이나 당했지만 녀석은 결코 멈추지 않았습니다. ​ 죽음의 어스름으로 가득한 전장에 빛을 밝히던 존재, 여명이었습니다. ​ 미군 해병대원들이 암말 여명에게 무모하다는 뜻의 ‘레클리스’라는 이름을 붙여 준 이유였습니다. ​ 영웅을 예우한 나라, 미국 ​ 미국은 전쟁 영웅을 예우하는 데 탁월한 나라였습니다. ​ 동물이라고 다르지 않았습니다.

 

 

전투가 끝난 직후 레클리스는 ‘상병’ 계급을 달았습니다. ​ 그 어떤 병사보다 훌륭히 작전을 수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 많은 미국 해병대원들이 레클리스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 영웅담이 알려지면서 한미 양국으로부터 모두 훈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 정전이 된 직후에는 ‘상사‘ 계급으로 진급합니다. ​

 

 

레클리스는 미국 해병대에게 더 이상 보급용 말이 아니었습니다. 전우이자 친구 이상의 존재였습니다. ​ ‘레클리스’의 활약이 미국에도 알려집니다. ​ 미국 해병대는 이 여론에 힘입어 레클리스를 미국으로 데려오기로 결정합니다. ​ 한 운송회사가 기꺼이 자비를 들여 모셔 오겠다고 나서기도 했습니다. ​

 

 

레클리스가 미국에 도착하는 날 미국 해병대는 꽃다발과 케이크로 그녀를 맞이합니다. ​ 전쟁 영웅에 대한 예의를 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 해병대는 레클리스를 그야말로 VIP처럼 대우했지요. ​ 상업적 이용도 철저히 막았을 정도였습니다. ​ 영웅이 미디어에 상업용으로 소비되는 게 올바른 대우가 아님을 알아서였습니다. ​

 

 

우리들의 진정한 영웅, 레클리스 ​ 1960년 레클리스는 은퇴합니다. 극진한 대접을 받으면서 여생을 보냈습니다. ​ 새끼 네 마리도 낳았습니다. 그리고 1968년 스무 살을 맞은 레클리스가 천천히 눈을 감았습니다. ​ 미국 해병대는 죽어서까지 영웅을 추모합니다. ​ 기념패와 사진으로 장례를 치르고, 미국 전역에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

 

 

우리나라에서도 베가스 전투가 벌어진 경기도 연천에 레클리스에 기념비가 남아 있습니다. ​ 우리가 현재 윤택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건, 전쟁 영웅들의 숭고한 희생 덕분입니다. ​ 레클리스와 같은 동물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 그녀를 비롯한 호국영령을 기억하면서 6월의 초여름을 만끽하시길. ​ 그들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건 평화로운 조국과 이를 만끽하는 우리 후손들의 웃음일테니. ​

 

 

글 / 강영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