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와 한국산 암말 레클리스 이야기
6.25와 한국산 암말 레클리스 이야기
1997년 미국 유명 잡지 ‘LIFE’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 100인을 발표했습니다. 조지 워싱턴, 에이브러햄 링컨, 마틴 루터 킹 등. 미국이 가장 존경하는 위인들이 즐비하지요. 그 중 한 명이 ‘레클리스‘(Reckless, 무모한·저돌적인)였습니다. 미국 전역에 기념비가 다섯 곳에나 세워질 정도로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은 존재입니다.
놀랍게도 레클리스가 활약한 무대는 ‘6·25 전쟁’이었습니다. 전쟁 영웅을 존중하는 미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그의 국적은 한국이었습니다. 또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을 덧붙이면, 레클리스는 사람이 아닙니다. 타고 다니는 말(horse)입니다. 한국의 말이 어떻게 미국에서 큰 사랑을 받게 된 것인지.
호국보훈의 달 6월, 레클리스의 이야기는 애써 생색(生色)내기 좋은 시기입니다. 미국 해병대가 찾은 잘생긴 암말 레클리스의 이야기는 1952년 3월 서울, 6·25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시작됩니다.
군마가 필요했던 미국 해병대는 서울경마장에 찾아갑니다. 아직 어린 한국 소년이 말 한마리를 데리고 서 있습니다. 밤색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암말이었습니다. 소년은 어린 여동생이 지뢰를 밟고 다리를 잃어 보철물이 필요해 말을 판다고 했습니다. 찡한 가슴이 동한 것과 더불어, 암말은 유난히 잘생기고 성격이 좋아보였습니다.
소년은 말을 건네주면서 말했습니다. “녀석의 이름은 여명이에요. 한국 말로 아침 해라는 뜻이에요. 잘 돌봐주세요.” 소년은 말이 저 멀리 떠날 때까지 지켜보고 서 있었습니다. 가정 형편만 아니라면 팔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소년의 눈가에 눈물이 고입니다.
미국 해병대는 여명에 보급품과 탄약 운반을 맡겼습니다. 날씬하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던 여명이 미국 해병대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요. 얼굴도 잘생겼는 데다가, 한번 가르쳐준 길을 완벽하게 숙지할 정도로 머리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먹이를 주는 해병대원들에게 얼굴을 비비기도 하고, 대화하는 장소에 굳이 찾아와 자리를 지킬 정도로 사교적이었습니다. 훈련은 어찌나 빨리 적응하는지. 마치 인간의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척척 수행합니다.
여명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코카콜라와 스크램블 에그. 영략없는 미군이었습니다. 포탄을 뚫고 온 영웅 ‘여명’ 전쟁이 끝나가는 시기일수록 전투는 더욱 치열하게 벌어지기 마련입니다. 정전 사인 직전의 영토가 그대로 고착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테이블 앞에 앉기 직전까지 총질이 끊이지 않았던 배경입니다.
1953년 3월이었습니다. 정전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그야말로 총알이 빗발치는 전투가 벌어집니다. 경기도 연천군에서 벌어진 ‘베가스 전투’였습니다. 중공군과 미군사이에 총알과 포탄이 가득합니다.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많은 죽음의 전장이었습니다.
미군이 중공군의 공격으로 힘겨워하던 때. 마침 보급품도 다 떨어진 상황입니다. 그때 연기를 뚫고 유유히 도착한 영웅이 있었습니다. 서울경마장에서 샀던 암말 ‘여명’. 녀석은 포탄도 두려워하지 않은 채 미국 해병대원들이 쓸만한 보급품들을 전달합니다. 베가스 전투 동안 51번이나 단독으로 임무를 수행했을 정도였습니다.
부상도 두 번이나 당했지만 녀석은 결코 멈추지 않았습니다. 죽음의 어스름으로 가득한 전장에 빛을 밝히던 존재, 여명이었습니다. 미군 해병대원들이 암말 여명에게 무모하다는 뜻의 ‘레클리스’라는 이름을 붙여 준 이유였습니다. 영웅을 예우한 나라, 미국 미국은 전쟁 영웅을 예우하는 데 탁월한 나라였습니다. 동물이라고 다르지 않았습니다.
전투가 끝난 직후 레클리스는 ‘상병’ 계급을 달았습니다. 그 어떤 병사보다 훌륭히 작전을 수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많은 미국 해병대원들이 레클리스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영웅담이 알려지면서 한미 양국으로부터 모두 훈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정전이 된 직후에는 ‘상사‘ 계급으로 진급합니다.
레클리스는 미국 해병대에게 더 이상 보급용 말이 아니었습니다. 전우이자 친구 이상의 존재였습니다. ‘레클리스’의 활약이 미국에도 알려집니다. 미국 해병대는 이 여론에 힘입어 레클리스를 미국으로 데려오기로 결정합니다. 한 운송회사가 기꺼이 자비를 들여 모셔 오겠다고 나서기도 했습니다.
레클리스가 미국에 도착하는 날 미국 해병대는 꽃다발과 케이크로 그녀를 맞이합니다. 전쟁 영웅에 대한 예의를 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해병대는 레클리스를 그야말로 VIP처럼 대우했지요. 상업적 이용도 철저히 막았을 정도였습니다. 영웅이 미디어에 상업용으로 소비되는 게 올바른 대우가 아님을 알아서였습니다.
우리들의 진정한 영웅, 레클리스 1960년 레클리스는 은퇴합니다. 극진한 대접을 받으면서 여생을 보냈습니다. 새끼 네 마리도 낳았습니다. 그리고 1968년 스무 살을 맞은 레클리스가 천천히 눈을 감았습니다. 미국 해병대는 죽어서까지 영웅을 추모합니다. 기념패와 사진으로 장례를 치르고, 미국 전역에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베가스 전투가 벌어진 경기도 연천에 레클리스에 기념비가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 윤택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건, 전쟁 영웅들의 숭고한 희생 덕분입니다. 레클리스와 같은 동물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녀를 비롯한 호국영령을 기억하면서 6월의 초여름을 만끽하시길. 그들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건 평화로운 조국과 이를 만끽하는 우리 후손들의 웃음일테니.
글 / 강영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