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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백두산 원명사 ( 지장기도도량)

광화문[태종] 2024. 7. 23. 06:32

김해 백두산 원명사 ( 지장기도도량)


경남 김해시 대동면 초정리 208번지
종무소 : 055 - 335 - 6449


회주 : 묘허 큰스님
주지 : 석우 재한스님

 

 

< 연 혁 >

원명사가 자리잡은 백두산은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과 같은 산명을 가진 백두대간의 마지막
지점으로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에 의해 북한 백두산에서 정남(正南)으로 곧바로 내려와
떨어지는 마지막 산 이 자리한 지점으로 민족 영산의 마지막 종착지였다.
원명사가 자리한 터 에는 오래전 가락국 때부터 사찰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예전 등복골이라 불리던 이 곳에 등복사(登福寺)라는 이름의 절이 있었다고 전해졌는데

최근에는 청기와편이 요사 뒤편에서 출토되 1392년 등복사가 유존해 있었음을 알수있다.

 

 

1920년대 경북 의성에 사시던 장(張)씨 성을 가진 "보수행" 보살의 삼촌이신 도암화상께서
백마산 "용흥사"가 페사되자 그곳 지장전에 모셨던 건칠 지장보살상을 모시고 용흥사 복원을
발원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부자집 며느리인 질녀에게 절을 짓고 지장보살님을 모실것을
부탁 하였으나 보수행 보살이 원불로 모시며 사찰 창건을 발원하던중 남편이 일본으로 가게되어
부산으로 와서 연락선을 기다리던중 밤마다 지장보살이 현몽하셔서

"백두산 복 받은 골짜기로 당신을 모셔 주고 일본으로는 가지않겠다' 라고 하셨다.

 

* 어서오십시요, 여기가 지장기도 도량인 김해 백두산 원명사 입니다,

장보살이 백두산까지 어떻게 지장보살님을 모시고 갈지 고민하던중 가까운 김해에 백두산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 등복사지에 개금한 지장보살님을 모시고 금불암(金佛庵) 이라는
이름으로 옛 등복사를 복원하였다.
그 후 1950년대 말 금강산에서 수행하시던 수월선사의손자상좌인 원명(圓명 1911~1992)

스님이 지금의 원명사로 사명을 바꾸어 중창하고 1996년상좌인 영봉(零峰,1935~1994)

스님에게 물려주어 약 30여년간 불사끝에 대웅전, 종각,등의 가람을 정비하였다.

 

입구에 모셔진 노천지장보살님

1995년 묘허스님과 재한스님이 차례로 주지를 엮임하면서 차차 안정되어가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원명사는 지장기도 도량으로 이는 원명사가 제2의 창건을 할 때부터 사찰 고유의

전통적인 기도형태를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 지장기도 도량으로 원명사는 대웅전

이외에도 지장전과 노천지장보살 입상이 널리 알려저 있다.
원명사에 모셔진 지장보살중, 자모 지장보살상은 세계의 대지진이나 국난이 일어나기

며칠전부터 눈에서눈물이 흘러 내리는 이적을 보여 경남 일대에 입소문이 자자하다,

 

종무소 와 설법전

 

원명사 대웅전 부처님, 좌로부터 아미타불 (관음, 대세지), 석가모니불( 문수,보현) 약사여래불(월광보살, 일광보살)

원명사 대선사 및 화상님들의 부도탑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