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자가 돈 못 버는 이유 vs 부자가 돈 버는 이유
일반인들이 오로지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는 반면, 부자들은 어떻게 돈을 더 많이 벌 것인가에 대해
철학자처럼 사색하고 농부처럼 근성 있게 일한다.
사람들에게 왜 돈을 버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은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번다고 간단하게 대답한다.
참 솔직하고 담백하며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하지만 먹고 살기 위해 일한다고 해도 서민들이 먹고 사는 것과
부자들이 먹고 사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서민들이 먹고 산다는 것은 의식주에 국한된 의미이지만, 부자들이 먹고 산다는 것은 새로운 돈을
창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난한 자들은 현재를 변명할 뿐 미래 계획이 없다
가난한 자들이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번다는 말은 하루나 한 달 단위로 인생을 계획하는 것과 같다.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 쓴다면 정말 ‘한달 살이’ 인생밖에는 되지 않는다. 현재는 남편의 월급으로 한 달을
살아가지만, 혹시라도 남편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당장의 의식주 해결이 곤란해진다.
‘내일도 오늘처럼 먹고 살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은 내일을 위해 오늘 아끼고 저축하려는 생각을 더욱
어렵게 만들 뿐이다.
대다수의 서민들은 내일을 위한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 걱정은 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는
못한다. 내일을 위해 준비할 돈과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정해진 월급을 가지고 한 달을 살아가기 때문에
내일을 준비할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한번 생각해보자.
정말 돈과 시간이 없는 것일까? 돈과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부자가 되기 위한 열정과 노력이 없는
것일 뿐이다.
적은 돈이라면 그에 맞는 소규모의 재테크를 할 수 있다.
지방의 소형 아파트 경락금액은 2천만 원도 있으며 3천만 원도 있다.
은행에서 융자 받고 월세보증금 받으면 1천500만 원 내외에서도 투자할 수 있다.
비단 경매물건에만 투자하라는 말이 아니다. 지방에 가면 수백만 원짜리 전답도 있다.
열정이 없고 관심이 없어서 투자를 못한 것이지, 돈과 시간이 없어서 투자를 못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부자들은 새로운 자본을 창출하기 위해 돈을 번다
부자들이 돈 버는 목적은 일단 먹고 사는 것은 기본 전제로 하고, 더 잘 먹고 더 잘 살기 위해, 그리고 다른 사업
구상이나 투자 대상을 찾았을 때 기회를 놓치지 않고 투자하기 위해서다.
전국적인 신발가게 체인을 몇 개 운영하고 있는 젊은 부자를 만났다. 그 사람의 직업은 고등학교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한 달에 수많은 돈을 벌면서 아직 학교에 근무하는 이유가 뭡니까?”
“제가 사업을 해서 한 달에 몇 천만 원을 벌지만, 그래도 교사 생활을 하면서 생활비는 나오지 않습니까?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예요. 그 중에서도 안정적이며 고정적인 월급이 나오면 그것만큼 좋은 것은 없어요.
조금만 더 있으면 연금까지 나오니까 더 좋죠.”
“아니, 지금 운영하는 체인점에서만 그렇게 많은 돈을 벌면서 또 돈을 벌고 싶은가요?”
“돈은 벌면 벌수록 좋은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벌린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벌린다는 보장은 없어요.
따라서 돈이 벌릴 때 열심히 벌어놓아야지 또다른 사업 아이템이 좋을 때 투자할 수 있는 것이죠.
대다수의 사람들은 현재의 월급과 수입을 보고 이 정도만 벌어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웃음은
오래 가지 않더라고요.
미래의 불확실성에 의해 내일 당장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인생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죠.
어떻게 새로운 돈을 벌어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할 것인가를 늘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교사들을 보면 한 달에 한 번 돌아오는 월급날만 기다리는 것 같아요. 공부 좀 하라고 하니까
‘공부는 공부하는 사람들만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나~원 참.”
루소는 “철학자처럼 사색하고, 농부처럼 일하라”고 했다.
서민들은 사색 없이 오로지 먹고살기 위해 농부처럼 일을 하고, 부자들은 어떻게 돈을 더 많이 벌 것인가에
대해 철학자처럼 사색하고 농부처럼 열심히 일한다.
똑같이 밭을 갈아도 어쩔 수 없이 밭을 가는 것과 능동적으로 밭을 가는 것에는 수확량에서 큰 차이가 나듯이,
돈을 벌어야 하는 당위성만으로도 부자와 가난한 자들의 재산 차이가 벌써 벌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