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대(淸代) 화가 동방달(董邦達)의 <倣古山水> 수권(手卷)
봄날의 조망 (春望)
國破山河在
국파산하재
나라는 부셔져도 산하는 남아 있고
城春草木深
성춘초목심
봄이 온 성 안에 초목은 우거졌네.
感時花濺淚
감시화천루
시절을 느껴보니 꽃도 눈물을 흘리게 하고
恨別鳥驚心
한별조경심
이별이 한스러워 새마저 마음을 놀라게 한다.
烽火連三月
봉화연삼월
봉화는 석 달이나 계속되는데
家書抵萬金
가서저만금
가족의 편지는 만금을 주고도 받을 수 없어
白頭搔更短
백두소갱단
흰 머리 긁으니 또 짧아져
渾欲不勝簪
혼욕불승잠
이제는 비녀조차 꽂을 수 없구나.
만고의 명시로 꼽는 두보(杜甫:712~770)의 춘망(春望)이라는 시다.
춘망이란 ‘봄날에 산하를 바라본다.’는 뜻이다. 당나라 현종 때 일어났던
안록산의 난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숙종 1년(757)전란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봉화가 석 달째 계속되고 있었다. 이 때 두보는 반란군에 점령당한 장안에서
가족의 생사도 모른 채 외롭고 쓸쓸하게 지내고 있었다.
이 때 그는 이 시를 지었다. 당시를 대표하는 이백(李白:701~762)과 두보의 시이지만
이 ‘춘망’의 시는 이후 여러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면서 애송되었다.
송대에 와서 사마광(司馬光:1019~1086)은 이 시를 해설하면서 “나라는
부셔져도 산하는 남아 있다 한 것은 아무 것도 남아 있는 것이 없다는 말이요,
봄이 온 성에 초목이 우거졌다는 것은 인적이 끊어졌음을 나타낸 말이라 하였다.
년 전 반라군의 기세에 밀려 현종은 마외(馬嵬)로 피난을 했고 피난길에서
총애하던 양귀비가 불당에 들어가 명주수건에 목을 매어자진을 한다.
오빠 양국충도 살해된다. 그러나 이 시가 나온 얼마 후에 반란군의 기세는
꺾이고 안록산도 죽음을 당한다.
이러한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 두보는 봄이 온 성 안에 핀 꽃을 보고 꽃이
눈물을 흘리게 한다고 애탄 하였다. 말구(末句)가 더욱 쓸쓸하다.
흰 머리 긁으니 또 짧아져 비녀를 꽂을 수도 없다 한 구절은 당시에는
남자들도 머리를 땋았고 비녀를 상투에 꽂았다.
실제 두보의 나이 46세였지만 8세기의 46세는 노인이었다.
※ 근현대 중국화가 육엄소(陸嚴少)의 <洞庭漁隱圖> 경편(鏡片)
※ 청대(淸代) 화승(畵僧) 팔대산인(八大山人)의 <洞庭漁隱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