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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메산골 아이들의 얼음배 타기

광화문[태종] 2024. 1. 13. 06:15

두메산골 아이들의 얼음배 타기

 

 

산이 높으니 골이 깊다고 했던가. 앞산과 뒷산에 빨랫줄을 매고 산다는 정선의 두메산골에는 봄이 한 발짝 늦게 온다. 남녘에서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그제야 산그늘 눈이 녹기 시작하고, 겨우내 꽁꽁 얼었던 앞개울도 눈 녹은 물을 한 모금 맛보고 나서야 지이직 쩌엉 얼음 풀리는 소리를 낸다. 그리고 이때를 기다려 개울에 나온 산골 아이들이 있으니, 분명 얼음배를 타려는 수작이 분명하다.

 

 

아이들 본새를 보아하니, 저마다 나무 작대기를 하나씩 챙겨 삿대 흉내를 냈다. 한 아이가 막 갈라지기 시작한 얼음 조각을 작대기로 밀어 그 위에 찰방 올라타자 또 다른 아이도 그 옆의 얼음배를 밀어 제법 사공 시늉을 내본다. 배도 아닌 것이 뗏목도 아닌 것이 아이들을 한 명씩 태우고 개울을 미끄러진다.

 

 

이 얼음배는 한 아이가 간신히 타서 가라앉지 않을 정도의 크기가 고작인데, 한 가지 문제는 배 위에서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없다는 것이다. 얼음이 이제 막 풀릴 때쯤이어서 오랫동안 사람을 태우고 있기에는 배가 너무 허술하고 위험하다. 물론 처음 얼음배를 타는 아이들은 얼음배만 믿고 너무 오래 타다가 물 속에 첨벙 빠지는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산골 아이들은 어런 점을 너무 잘 알고 있다. 해서 어느 정도 얼음배를 가지고 놀다가는 다시 새로운 얼음배로 갈아타곤 한다.

 

 

이렇게 몇 번이나 얼음배를 타고 나면 물에 빠지지는 않았더라도 신발이며 바짓단 아래가 축축이 젖어 있게 마련이고, 그대로 집에 들어갔다가는 어머니에게 지청구를 들을 게 뻔한 일인데, 여기에도 산골 아이들만의 비책이 있다. 옹기종기 개울가에 모여 불을 피워놓고는 신발이며 바짓단을 다 말린 뒤, 훌훌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 되는 것이다. 이 산골 아이들에게 산골짝의 개울은 놀이터나 다름없다. 한겨울이면 이곳의 아이들은 얼음판 위에서 앉은뱅이 썰매를 타거나 대충 깎은 팽이를 치고 논다.

 

 

 

겨울이 끝날 때쯤에는 때맞춰 얼음배를 타고, 여름에는 입술이 시퍼렇도록 멱을 감거나 어깨너머로 배운 서툰 돌꽝(커다란 돌을 내리쳐서 돌 밑에 숨은 고기를 기절시켜 잡는 방법) 솜씨로 고기를 잡는다. 하지만 이제 정선의 두메마을 풍경도 예전 같지 않아 애당초 개울가에서 노는 아이들을 만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아이들을 만나기 어려우니 아이들 놀이조차 만날 수 없게 된 것은 당연지사.

 

 

그러고 보면 옛날 시골 아이들의 놀이에는 분명 운치와 낭만이 있었다. 자연과 함께 호흡하고,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고, 보듬고, 그것과 어우러지는 맛이 있었다. 요즘 아이들처럼 빤하고 삭막하지는 않았다. 최소한 산골짝 마을에까지 컴퓨터라는 것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이제는 정선의 두메산골 아이들도 침침한 방안에서 컴퓨터 게임으로 얼음배와 썰매를 대신한다. 그러니 이제 어디 가서 얼음배 타는 아이들을 다시 만날 것인가.

 

 

글 / 사라져가는 이 땅의 서정과 풍경 / 이용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