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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kor(앙코루) 유적 3.Banteay Srei/Banteay Samre

광화문[태종] 2024. 6. 17. 05:49

 

Angkor 유적 - Banteay Srei 반티아이 스레이는 브라만 승려 야즈나바라하(Yajnavaraha)가 라젠드라바르만 2세(944~968) 때 준공하여 자야바르만 5세(968~1001)에 완공하였다. 반티아이는 성채, 스레이는 여인 즉 "여인들의 성채"라는 이름은 여자와는 무관하며, 분홍빛 사암과 붉은 라테라이트석을 사용하여 사원 전체가 분홍빛 연꽃처럼 대단히 정교하고 아름다운 여성적 분위기의 부조로 온통 장식되어 있다는 점에서 여인이란 명칭이 연관된 듯하다.
"크메르 건축 예술의 보석" 반테이 스레이 복원작업을 하던 프랑스 고고학자는 이렇게 표현했다. 쉬바 신에게 봉헌된 쓰레이는 "보석"이란 표현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고 정교하고 완벽하다. 그만큼 쓰레이의 부조는 크메르 조각 예술의 극치를 보여주며, 마치 천재적 재능을 가진 조각가가 분홍빛 사암에 자신있게 칼을 대어 완성한 걸작품 같다.

 

 

 

Angkor 유적 - Banteay Samre

 

반티아이 쌈레는 수르야바르만 2세(Suryavarman II, 1113~1150)가 건축하였으며, 반티아이란 크메르 어로 "성채" 쌈레는 원래 최초의 크메르가 쿨렌 산에 터를 잡을 때 그곳의 원주민이었던 '쌈레" 라는 소수부족의 이름에서 따 온 것으로 "쌈레족의 성채'라는 뜻이다
반띠아이 쌈레는 비쉬누 신께 바친 신전으로 고색창연함을 간직한 홍보석처럼 아름다운 신전이다. 허물어진 원래의 자재들을 모아 꿰맞추는 재건축 신공법인 아나스틸로시스 공법(Anastylosis Method)을 검증 끝에 도입하여 완벽하게 짜맞추었지만 20여년간 공산 치하를 거치는 동안 관리를 소홀히 하여 허물어진 부분들이 군데군데 눈에 뜨인다. 그러나 여전히, 비록 부서진 붉은 담장 위에는 누런 세월의 때가, 바람에 실려 내려앉은 부드러운 흙 사이로 들풀이 뿌리를 내려 흩날리지만 그 자체가 눈물이 날 만큼 정감 있고 고즈녁함을 느끼게 하는

 

신전이다. 쌈레는 앙코르와트를 건립했던 수르야바르만 2세 시절 건립되어 석재며 건물 디자인, 양식 등은 앙코르와트 3층 성소 부분의 미니어쳐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모방적이며 귀엽다. 그러나 수르야바르만 2세는 이 사원을 준공만 한 채 그해 사망하여 그 아름다움을 마주하지 못했고 야소바르만 2세 시절에 완공된 것으로 추정된다. 남아 있는 기록은 없지만 그 후대(아마도 불교 시절)에 증축 내지 개축을 하였는지 바이욘 양식도 일부 가미되어 있다. 이 사원의 특징은 앙코르와트의 축소판이란 점과 건물들이 모두 해자로 격리된 채 연결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앙코르와트는 섬 위의 사원인데 비해 쌈레는 사원 자체가 연못에 떠 있는 작은 앙코르와트이란 점이다. 갤러리와 건물 창문은 크메르 창문 건축의 특징인 밸러스터(Baluster) 양식의 기둥들로 떠 받혀

 앙코르와트 3층 성소탑의 건물들과 너무나 흡사하다.